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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기자명 장기준 기자

제종길의 우리가 사는 도시 이야기 73

  • 입력 2021.03.24 17:49
  • 댓글 0

 

         문화도시로 되살아나는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어떤 개인이나 가정, 지역 또는 대도시와 국가라도 다 실패와 고난을 겪는다. 이를 극복하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회생을 못 하기도 한다. 어떠한 도시도 성공만을 거둔 도시는 없다. 오랫동안 영광의 누렸던 도시들의 실패는 그 자체로 충격이지만, 다시 극복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모습을 통해 다른 도시들은 커다란 교훈을 얻는다.

지난 30∽40년 동안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도시들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자동차 도시로 유명한 디트로이트(Detroit)다. 이 도시는 미국의 북동쪽에 있는 가장 큰 도시로 오대호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도시 이름도 ‘해협’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디토와(Détroit)’에서 왔다.

오대호 중의 하나인 이리호(Lake Erie)와 부속 호수라고 할 수 있는 세인트클레어호(Lake St. Clair) 사이의 좁은 통로인 디트로이트강에 자리를 잡아 적절한 도시 이름으로 보인다. 디트로이트는 별명도 많다. 모타운, 르네상스 시티, 해협의 도시, 하키 타운, 세계의 자동차 수도, 록 시티, 민주주의의 무기고, 타이거 타운 등인데 다 이 도시가 산업과 음악 그리고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역동적인 도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미시간주 웨인 카운티(Wayne County) 주도인 디트로이트는 2019년 현재 약 67만 명으로 캐나다 국경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로 24번째 도시다. 도시권역 전체는 430만 명으로 중서부에서는 시카고 다음이며, 전국에서는 14번째로 크다.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한때 이 도시는 10년 만에 인구가 113%가 증가하였으며, 1950년에는 185만 명에 달했다.

196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0년에 인구 100만 명이 무너졌고, 지금까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는 물론이고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자 중심이었으며, ‘빅 쓰리’ 제조업체인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포드(Ford), 크라이슬러(Chrysler)의 본사가 지금도 이곳 도시권 내에 있다.

그러나 단순한 자동차 공업 도시가 아니고, 중요한 미국 문화의 한 중심지로 자리잡앗으며 역사적으로 음악과 예술, 건축 그리고 스포츠 강점을 가진 도시로 발전해왔다. 아직 경제적으로도 비중이 큰 도시인데 중서부에서 시카고 다음이며, 미국 전체에서는 13위다. 2007년에는 디트로이트 도시권은 수출로 볼 때 310개 도시권 가운데 1위를 하였다.

1701년 당시에 미래의 도시로 만들어진 디트로이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오대호 지역의 중요한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1920년에는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에 이어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해협은 한때 매년 전 세계 곳곳으로 6,500만 톤 이상을 해운으로 운송했으며 뉴욕의 세 배 이상, 런던의 약 네 배였다.

1940년대까지는 인구에 있어서 네 번째를 유지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 쇠퇴로 구조 조정, 일자리 상실, 급격한 교외화로 인해 20세기 후반부터 도시 붕괴 상태에 접어들었다. 자동차 산업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결국 2000년대 초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2013년 디트로이트는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파산 신청을 한 미국 최대 도시가 되었다. 일년 후에 2014년 12월에 시는 재정 통제권을 되찾고 재활을 시작하였다.

 

 

디트로이트의 다양한 문화 중에서 음악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지역적으로나 국제적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시는 모타운(Motown, 세계적으로 저명한 음반회사인데 자동차 동네, 즉 모터타운에서 이름을 따왔음)이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소유한 최초의 음악 레이블이 있고, 테크노 장르를 불러일으켰으며, 재즈, 힙합, 록과 펑크 음악 전반에 선구지역으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디트로이트가 빠르게 성장하던 호황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물과 역사적 기념물들이 조성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건축 유산으로 보존 노력을 기울였고 여러 번의 대규모 재활사업을 통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즉, 여러 극장과 엔터테인먼트 장소의 복원, 고층건물 개조, 새로운 스포츠 경기장 조성 그리고 공원 조성과 강변 재생사업 등이다. 최근에는 여러 도심 동네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점차 매력 있는 관광지가 되고 있으며, 연간 1,900만 명이 방문한다.

2015년, 디트로이트는 미국 최초로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로 지정되었다. 이 도시는 문화 르네상스 센터(건축 다이제스트에 포함) 건립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수많은 새로운 호텔, 레스토랑 및 갤러리가 한때 미국 산업주의의 진원지였던 도시에 초점을 되돌렸다. 장소에 대해 자부심과 이러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헌신은 디트로이트의 장래를 밝게 만들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유네스코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엄청난 문화적 자산을 가진 이 도시가 그야말로 예술적 열성으로 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파산이라는 큰 충격 이후에 그 열정이 화고하고 창의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이 도시는 또한 도시 인구 감소와 붕괴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위기로 인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요리사, 예술가, 디자이너, 큐레이터, 개발자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기업가가 도시의 모든 것이 사라졌던 곳을 역동적인 실험 무대로 바꾸었던 것이다. 새로운 디트로이트의 탄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파산 후 도시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 중 하나는 도시의 고장 난 가로등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한때 40%가 작동하지 않아 공공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주택 포기로까지 이어졌다. 당시의 이 암울한 도시가 미국의 최악의 범죄 도시였기도 했다. 구식나트륨 조명 65,000개를 엘이디(LED)로 교체하는 공사는 2014년 말에 시작되어 2016년 말에 완료하였다. 이젠 모든 가로등을 엘이디로 갖춘 미국 최대 도시이다.

또한, 시민과 새로운 주민들이 지역을 개조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에는 혁신 자원봉사 그룹과 다양한 도시 원예 운동단체들이 참여하였다. 도시에 버려진 집 수천 채를 철거하여 녹지대로 만들기도 했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있는 시내 공원들과 도시 조경은 개선하여 쾌적한 도시로 만들어 나갔다. 그러자 고학력의 전문 인력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범죄도 줄었으며 공실 공간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여객선 터미널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하트 플라자 상가와 르네상스 센터까지 강변길로 연결하였다. 즉 강변을 여유 공간으로 변모시킨 것으로 소위 ‘리버 워터프론트(river waterfront)’를 완성한 것이다. 이곳의 ‘디트로이트 국제 강변길(Detroit International Riverwalk)’는 2021년 ‘USA 투데이 / 10 베스트 리더스 초이스 어워드(10 Best Reader’s Choice Award)’ 대회에서 미국 최고의 강변길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환경 개선 노력과 더불어 독특한 문화, 특이한 건축물, 그리고 도시 재생 노력으로 디트로이트는 최근 몇 년 동안에서 관광지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017년에 곡 가보아야 할 곳 52곳 가운데 아홉 번째로 그 이름을 올렸고, 유명 여행안내서인 ‘론리플래닛( Lonely Planet)’은 2018년에 방문하기 좋은 세계 두 번째 장소로 디트로이트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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