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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동균 칼럼] 입학철 단상

  • 입력 2022.03.0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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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철 단상

 

입학철이다. 필자는 안산 정주 42년차다. 딸 하나를 가졌다. 딸이 성포초를 거처 안산 부곡중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때 학부모 회장을 했다. 교장의 추천으로 중학 입학식날 중학 교장이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당시만 해도 학부모 중에 운영위원을 선임하려면 서로 맡지 않으려 하던 시기. 위원장을 맡아 몇 번 회의가 열린 뒤 같은 여성 학부모 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초등생이었을 때는 그런대로 숙제도 봐주는 등 뒷바라지를 했었는데 중학생이 된 뒤, 영어알파벳 소문자 숙제를 봐달라고 해서 얼버무리고는 혼자 부곡동 밤거리를 헤매며 많이도 울었단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자라며 동네 남자와 결혼, 안산으로 이주했단다. 부부 모두 국졸이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물어왔다. 며칠을 고민 끝에 당시 이우석 교장과 머리를 맞댔다.

이를 계기로 주위에 알아봤더니 국졸 학부모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당시 지역위원으로 운영위원이 되어 봉사하고 있는 최인석 월피신협 전무와 중학과정 야학을 열기로 했다. 교장께 사정을 전하고 방과 후 교실 두칸을 빌려 야학을 시작했다. 사동의 한양대학교에 지금 총장이 된 김우승 교수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야학 개설의 취지를 알렸더니 10여명의 대학생들이 교사로 참여했다.

국졸 출신 30여명의 엄마들이 늦깍이 중학생으로 입학식을 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커다란 울음바다가 됐고, 그렇게 안산늘푸른 야학교가 문을 열었다

내가 초대 교장(?)을, 최인석이 교감을 맡아 매주 화, 금 이틀 동안 수업했었다. 중학 과정을 2년에 마치고 고교입학 검정고시를 보는 학제로 운영했다. 나는 역사와 한문을, 최 교감은 수학을 맡았다. 나머지는 한양대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영어, 과학 등 중학 과정을 가르쳤다. 모두가 열심이었다. 영.수 과목이 버거운지 엄마 학생들이 숙제를 못 해와서 사랑의 매(?)로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맞으면서도 내내 웃음을 읽지 않았다. 처음 엔 버벅거리던 발음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동네 간판 읽는 맛에 살 맛 났단다. 이렇게 2년간 부곡중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고입 검정고시에 절반 넘게 합격되어 신이 났다. 부곡중에서 2년을 가르치고 첫 졸업식. 더러는 자식들, 특히 며느리에게 창피하다며 야학에 다니는 것 자체를 숨긴 엄마 학생들이 많았다.

그해 5월 중순경 현수막도 없이, 수업하는 시간에 맞춰 졸업식이 진행되었는데 일부 학생들은 남편과 자식들의 꽃다발에 묻히다 시피 했고, 스승의 노래가 합창 될 때는 모두가 얼싸안고 큰 소리로 울면서 좁은 교실이 떠나갈 듯했다. 눈물의 졸업식장 이었다.

3년차에 접어들면서 학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산 중앙중학교로 옮겼다. 밤늦은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부곡중학교가 외곽에 있어 버스타기 등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말 못 할 불편을 겪는다며 옮겨 달라 했다. 안산 교육지원청 교과서 심의위원 등을 지내며 안면이 있던 교장 선생님께 부탁하여 흔쾌히 들어 주셨고, 중앙중 교사중 희망 선생님들을 선발, 적극 지원해 주셨다.

중앙중으로 옮기자 많은 엄마 학생지원자들이 몰렸다. 면접을 통해 수업 이수 가능하신 분 중 고령자순으로 뽑았다. 학교엔 활기가 넘쳤고, 졸업생들이 총동창회를 결성하는 등 여느 중학교 못지않은 야학 분위기에 우리들은 직장과 야학교에만 빠져 살았다. 봄 소풍과 가을 수학여행도 일반 중학교처럼 교과 과정에 포함했다. 중학교 교실에서, 그 의자에 앉아 수업받기를 원했던 학생들이 모두를 요구했다.

부곡에서 중앙중으로 옮기면서 규모가 커지자 '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안사모) 멤버들이 적극 참여하여 운영을 돕고 나섰다. 아니 안사모가 운영의 주체가 됐다. 책값을 비롯한 모든 경비는 무료였으므로 야학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나를 비롯한 안사모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꾸려 나갔지만 많은 부담이 됐었다. 우리들의 취지가 주위에 조용히 전파되자 후원회 결성을 하라는 권고가 들어왔다.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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