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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흥선 칼럼] 일장춘몽

  • 입력 2022.05.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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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장춘몽

 

이 꿈같은 봄날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음춘평화(吟春評花 봄을 노래하고 꽃을 평함) 의 글을 써 독자분들께 감정팔이를 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북송(北宋)의 철학자 주돈이의 애연설(愛蓮說)에 빗대어 몇 가지 꽃을 개인적으로 평(評)한다면, 먼저 봄을 맞이한다는 개나리꽃(迎春花영춘화)은 빈틈없이 빽빽한 군화(群花)와 눈부신 황금빛깔로 이어서 피어날 꽃들의 선봉장과도 같고 새봄의 희망을 선물하는 듯한 꽃 중의 부자(花者中之富)라 부르고 싶다.

깊은 산 속 아직은 찬바람이 남아 있을 때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피어나는 진달래꽃의 자태는 감히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만질 수는 없는 꽃 중의 은일자(花者之隱逸)이자 우리 민족의 정서 중 하나인 한(限)을 간직한 꽃 같아 민족의 꽃(民族之花)이라 부르고 싶다. 김소월의 시(詩시) ’진달래 꽃‘은 사랑과 슬픔과 이별을 노래한 가장 대중적(大衆的) 정서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진달래꽃이 갖는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꽃 중에 가장 먼저 피어나며 시들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꽃잎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마치 귀금속 같은 보석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것처럼 빛나는 산수유꽃(山茱萸花)을 꽃 중의 고귀(花者中之高貴)라 표현하고 싶다. 수많은 꽃 중에 봄눈을 맞으며 피어나는 꽃은 아마 매화밖에 없을 것이다. 매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소나무,대나무,매화)중 하나로 오직 눈 속에 피어난다.

고결한 매화를 사랑하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지만 필자가 꼽은 문장은 바로 ’눈속에 피는 꽃(매화)는 봄을 다투지 않는다.(編宜雪裡不爭春편의설리부쟁춘)‘이다. 이 문장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 같은 글귀이기도하다. 매화(梅花)야 말로 꽃 중의 군자(花者中之君子)라고 부르고 싶다.

벚꽃만큼 일반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꽃도 없을 것이다. 벚꽃축제는 이제 웬만한 도시에서는 쉽게 열 수 있는 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벚꽃에 대한 생각은 일본의 사무라이(武士)가 연상된다.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소설 『도쿠가와이에야스(대망大望)』를 보면 패배하여 명예를 잃은 사무라이(武士)들이 할복하는 장소로 택하는 곳이 바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바람에 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이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도쿠가와의 연합군에 대패한 다케다 신겐의 후계자 다케다 가쓰요리는 64여 명의 가신 및 처자식들과 패주(敗走)하다 산벚꽃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덴모쿠 산에서 집단 자결을 한다. 당시 가쓰요리의 부인 오다와라의 나이는 꽃같은 19세였는데 자결하면서 남긴 시가 자못 애간장을 녹인다... 돌아가는 기러기야 내 부탁 들어다오. 이 사연 듣고 가서 사가미 고을에 떨어뜨려 주렴. 지는 꽃 못내 아쉬워 울어주겠지...‘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무자비(無慈悲) 그 자체이다.

풍우(風雨)는 언제나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봄꽃을 시샘하여 온 하늘에 꽃잎을 날려 버리고 만다. 마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음)처럼 아름답고 꿈같은 봄날은 꽃처럼 금방 시들고 만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에서는 ‘보게나 봄 저물어 꽃도 점점 떨어지니, 다름 아닌 고운 얼굴 늙어 죽는 때로구나, 하루아침에 봄이 가고 고운 얼굴 늙으니, 꽃 지고 사람 지면 서로 알지 못하리라.’라는 시(詩)로 봄꽃과 여자 주인공인 임대옥의 기구한 운명을 절묘하게 일치시켜 독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봄날을 일컬어 ‘무릇 천지는 만물의 나그네를 맞는 객사요 세월은 백대의 지나가는 길손이다. 부평초(浮萍草)같은 인생이 꿈과 같으니 기쁨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략) 아름다운 자리를 펴 예쁜 꽃 앞에 앉고 술잔을 날려 달 아래 취하니 아름다운 문장이 있지 않다면 어찌 고상한 회포를 펴겠는가?

만일 시를 짓지 못한다면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리라.‘ 이처럼 꿈같은 봄날에 시를 쓰면서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다. 확대해석하면 우리네 인생사 짧고 덧없으니 아름다운 시(詩)를 쓰라는 것이고 시를 쓰지 못하면 대신 술을 마셔 취함으로서 일장춘몽(一場春夢)과도 같은 인생을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리라.

(2022.4.10. 春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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