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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신용석레인저가떴다] 불끈 봉우리 사이 굴곡진 암릉…'저세상 스릴'

  • 입력 2022.06.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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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자연성릉. 좁은 암릉이 기다란 성(城)처럼 이어진 계룡산 풍경의 백미. 정상 천황봉은 구름에 가려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계룡산(鷄龍山)은 산의 모습이 ‘닭(金鷄)이 알을 품고,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생김새’라는 뜻이다. 산에 영험한 기운이 있다하여 삼국시대 이래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명산이다. 계룡산 일대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적 해석은 매우 많은데, 그 중에서도 태극설을 친다. 즉, 백두대간이 내려오다 덕유산에서 대둔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이어진 산맥이 태극 형상이라는 산(山)태극설과, 계룡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갑천-금강으로 이어지며 태극 형상을 띤다는 수(水)태극설이다. 이 태극의 중심이 계룡산 아래 신도안(新都安)이다.

신도안은 조선시대 이래로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 여겨져 수많은 무속인들과 신흥종교가 들어왔으나, 1983년 난립된 종교시설들이 일제히 정비되고, 이후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가 들어섰다.
계룡산은 아직도 많은 무속인들과 기도자들의 성지다. 신(神)내림(신의 기운을 받음)과 신명(神命/신의 계시)이 가장 빠른 산이라고 한다. 산에서 하는 무속행위는 거의 사라졌지만, 산 아래 마을에는 굿당과 기도터가 많다.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가 작은 계룡산이 지리산에 이어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그만큼 ‘영산(靈山)’의 명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미신의 산’이라는 틀을 넘어 현대적인 관광개발을 원했던 지역사회의 염원도 있었다.
계룡산 등산은 3대 사찰인 동학사, 갑사, 신원사에서 자연성릉으로 오르는 코스가 있고, 동남쪽에 수통골 중심의 여러 코스가 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거친 경사와 돌길이 많고, 능선에서 조망하는 산과 도시 풍경이 일품이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동학사-남매탑-삼불봉 3.7km “녹색계곡 힐링길, 단아한 남매탑, 삼불봉에서 확트인 조망”

동학사에서 남매탑에 올라 자연성릉을 거쳐 갑사로 내려가는 코스는 계룡산의 대표적인 명소를 고루 들리며 걷는 길이다. 동학사 입구 주차장에서 등산로는 사찰관람료를 내야 하는 동학사 방향과 무료입장하는 천정골 방향으로 나뉜다. 두 갈래는 남매탑에서 만난다.
산행 들머리는 이왕이면 순하게 걷는 코스가 좋다. 동학사계곡길은 아름드리 고목과 울창한 신록, 그리고 천년의 사찰이 있어 등산에 앞서 워밍업을 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3000원은 시주(施主/기부금)를 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호반새. 계룡산의 깃대종, 즉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종이다. 사진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 © 뉴스1

 

 

 

 

 

호반새 한 쌍. 둥지에서 막 벗어나는 암컷과 둥지를 경계하는 수컷. 사진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 © 뉴스1


아침 계곡은 물소리와 새소리로 낭랑하다. 세상에서 받아쓰기가 가장 어려운 소리는 새 소리다. 삐리리~릿, 츄츠!삐삐!, 뾰호르르르~ 등등 소리는 같은데 사람마다 표기가 다르다. 거기다가 사투리까지 있어 소리만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종도 있다. 뾰호르르르~ 하고 마지막 음을 삼키는 새는 계룡산의 깃대종(상징종)인 호반새다. 얼굴도 부리도 몸통도 온통 진홍빛이다. 영어이름은 ‘붉은색 물고기사냥왕(Ruddy Kingfisher)’이다. 물고기, 개구리, 뱀 등을 큰 부리에 물고 나뭇가지에 패대기친다.

 

 

 

 

 

이끼도롱뇽. 계룡산과 주변의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사진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 © 뉴스1


울창한 신록 밑 계곡은 어둡고 축축하다. 그 주변의 이끼가 많은 너덜에 이끼도롱뇽이라는 진귀한 생물이 산다. 허파가 없이 피부로 호흡하는 이 생물은 북·중미지역에서 사는 미주도롱뇽의 일종으로, 예전에 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이 붙어있었을 때 이동한 종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어 학명에 ‘코리아’가 붙었다(Karsenia koreana). 이끼도롱뇽이 잘 살아나가려면 축축한 환경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최근의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건조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6월의 계곡길은 초록길이다. 나무들의 몸은 늙어도, 언제나 어린 잎을 낸다. 느티나무, 팽나무, 중국단풍 등 길가의 거목들이 우산처럼 펼친 나뭇가지마다 초록잎들이 무성하다. 바람에 잎들이 흔들리는 것일까, 잎들이 흔들리면서 내는 바람인가, 미풍(微風)이 불어주는 그늘길이 시원하다.
동학사는 비구니 승가(僧伽)대학이 있는 절답게 전각도 마당도, 스님들 모습도 정갈하다. 얼마전 타계한 배우 강수연이 주연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머리를 시퍼렇게 깎은 소녀스님의 파리한 인상이 떠오른다.

 

 

 

 

 

 

동학사 승가대학.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道場). 뒤에 구름에 잠긴 계룡산 © 뉴스1


동학사에서 남매탑까지 1.6km의 오르막은 그런대로 가다가, 마지막 400m의 경사가 급하다. 안전쉼터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어떤 단체의 선두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날라가고, 숨소리가 격한 후미가 쩔쩔매며 따라붙는다. 심장마비 사고는 대부분 오전의 오르막에서 발생한다. 자기 체력에 맞는 보폭과 속도로 쉬엄쉬엄 가야한다.

1시간쯤 걸려 도착한 남매탑 주변은 여기저기서 올라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여러 등산로가 여기로 모여서 흩어진다. 각각 보물로 지정된 두 탑은 본래 9층, 7층이었는데, 도굴되어 무너져 있던 것을 바로 세우면서 7층, 5층이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돌들은 어디로 갔을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남매탑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어떤 스님과 여인이 운명적으로 만났지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없어, 남매로서만 지내자는 약속을 하고 수행(修行)한 끝에 같은 날 운명해서, 그들을 기리는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사연따라 디자인을 했을까, 두 탑의 이미지는 순결하고 단정하다. 빗방울이 굵어지며 남매탑이 젖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탑 풍경이다.

 

 

 

 

 

 

남매탑. 전설은 신라시대, 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이다 © 뉴스1


남매탑에서 가파른 돌길과 철계단을 올라 삼불봉(777m)에 오른다. 멀리서 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세 분의 부처 모습이라서 삼불봉(三佛峰)이다. 부처님 머리에서 보는 경관이라 사방의 조망이 확 트였던 곳인데, 오늘은 안개구름으로 시야가 뿌옇다. 차가운 비바람이 솟구쳐 올라 서 있기 힘들다. 오뉴월에 덜덜 떨며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 삼불봉-관음봉-연천봉-갑사 6.5km “짜릿한 자연성릉, 전망대 관음봉, 신비한 연천봉”

삼불봉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가 고도를 낮추니 비바람이 잦아든다. 관음봉까지 1.6km의 기다란 암릉이 성(城)처럼 보여서 자연성릉이라 부른다. 닭벼슬처럼 솟아오른 봉우리들 사이로 용의 등어리처럼 휘어지고 굴곡진 암릉 위를 걸으며 짜릿한 고도감을 느끼는 길이다. 그러나 촘촘히 설치된 난간과 데크로 예전의 아찔한 스릴은 덜하다. 군데군데 뷰 포인트에서 지나온 암릉과 가야 할 봉우리의 동양화같은 절경, 그리고 저 멀리 구름 아래 도시와 벌판을 조망한다.

 

 

 

 

 

 

자연성릉길. 바람에 휘어진 소나무 위로 관음봉-문필봉-연천봉이 조망된다 © 뉴스1

 

 

 

 

 

관음봉으로 올라가는 천국의 계단. 400개 계단의 고행 끝에 천국의 봉우리에 선다 © 뉴스1


자연성릉의 막판에 하늘만 보이는 ‘천국의 400계단’을 숨차게 올라, 관음봉(766m)에 도착한다. 삼불봉에서 한 시간쯤 걸렸다. 천황봉(847m)을 대신하는 정상석에 인증사진 줄이 길게 섰고, 팔각정 안에서는 점심잔치가 벌어졌다. 봉우리 이쪽 저쪽의 전망대에서 사방팔방을 바라본다. 자연성릉-삼불봉, 쌀개봉-천황봉, 문필봉-연천봉 라인을 조망하고, 저 아래 깊숙한 계곡과 넓은 벌판을 내려다 본다. 630년 전에 이성계와 무학대사도 여기서 조선의 도읍으로 삼을 신도안을 내려다보지 않았을까?

다 좋은데,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에 이쑤시개처럼 꼽혀있는 통신탑들이 눈에 가시다. 천황봉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서 출입금지다. ‘군사시설?’이라니!, 언제적 얘기인가? 계룡산의 정기가 몰려있을 산꼭대기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 국민에게 내주기를 소망한다. 청와대처럼.

 

 

 

 

 

관음봉에서 본 자연성릉. 용의 척추가 굽이친 듯한 암릉 끝에 삼불봉이 보인다 © 뉴스1


관음봉에서 내려가 문필봉 허리를 20분쯤 돌아 내려서면 사거리(연천봉 고개)가 나오고, 10분쯤 직진해 연천봉(743m)에 오른다. 연천봉(連天峰)은 하늘과 닿는다는 이름답게 계룡산에서 기운이 가장 ‘쎈’ 명당으로 꼽힌다. 왜 그럴까? 도사와 무당들이 기도했을 법한 바위에 앉아 눈을 감았으나, 기자는 그런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공부가 안되어서 그럴 것이다.
바위 한 쪽에 “조선은 482년 만에 망한다”는 글(암호문)이 새겨져 있다. 따져보니 482년 전·후의 1870년대는 외세의 침략으로 조선의 멸망이 시작되는 시기였으니, 그 예언이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다.

다시 사거리로 돌아나와, 갑사로 내려서는 하산길로 들어선다. 이 길의 처음 30분은 가파른 돌계단이고, 이후 30분은 부드러운 경사의 돌길이다. 돌틈 사이로 보랏빛 골무꽃과 자란초가 빗물을 머금어 반짝이고, 산수국도 꽃잎을 터트리기 직전이다. 6월의 산 공중은 온통 녹색 신록이지만, 길 바닥은 지난해 낙엽더미들이 아직 빨갛게 뒹굴고 있는 가을이다. 가을풍경이 최고라는 ‘추(秋)갑사’에 도착한다. 어느 계절에 와도 전각과 소나무와 숲과 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으뜸인(甲) 절(寺)’이다.

 

 

 

 

 

 

갑사. 전각과 소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풍경이 으뜸이다 © 뉴스1


갑사에서 주차장까지 2km의 오리(5里)숲을 터벅터벅 걸으며 중간 중간의 느티나무 고목들과 오랜만에 만난다. 그래, 처음 본 사이가 아니지, 줄기는 더 갈라지고 밑둥의 상처가 더 깊어졌구만…나무들도 내게 말할 것이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들었구만, 또 볼 수 있을까?
비바람 속에서 10.2km의 돌길과 암릉을 5시간 걸으며 계룡산의 명소들을 알현했다. 다른 산에 다녀왔을 때 힐링효과가 3일이었다면, 기(氣)가 센 계룡산을 다녀왔으니 3일쯤 추가효과가 더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계룡산 전경. 왼쪽 천황봉, 가운데 자연성릉과 관음봉, 오른쪽 연천봉. 사진 박만근, 국립공원공단 © 뉴스1


예로부터 국가의 명당으로 인정받아온 계룡산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의 향기는 여전하지만, 명산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흔적도 많다. 산 정수리의 통신탑과 공원경계의 난개발 자국과 모텔촌이 그것이다. 지혜를 모아 이 위대한 산의 자연풍경이 온전하게 복원되고, 문화적 기품이 유지되기 바란다. 한 때는 배척했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적 요소를 콘텐츠화 해서 계룡산 특유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새벽을 여는 닭, 하늘로 웅비하는 용의 기상이 서린 계룡산이다.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더욱 기대는 명산, 누구나 가고픈 이상향, 국민들이 더욱 사랑하는 국립공원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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