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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흥선 칼럼] 至樂書樂(지락서락)

  • 입력 2022.07.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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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至樂書樂(지락서락)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언론과 세간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무슨 책을 챙겨 가느냐였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주요관심사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인 셈이다. 세종대왕은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하여 관료들에게 길게는 1년 이상 직책에서 벗어나 책을 읽게 하는 휴가를 주었다. 책을 읽고 귀직(歸職)한 관료들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임금께 각종 개혁정책을 건의하였고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 등 한민족(韓民族)의 중흥을 이끌었다.

필자의 경험 중에도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의 소감을 식사자리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상사(上司)가 있었고, B부시장의 책상위에는 늘 책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말단시절 한 번은 전주시로 상사와 함께 출장을 가는데 옆자리에 동승한 상사는 출발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책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었으며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을 때는 책을 소재로 활용한 일화가 많다.

한 번은 중국 서남부 L시와 우호도시 협약을 맺기 위해 대표단장 임무를 띠고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공식회의 직전에 J시장이 필자에게 ‘임국장, 이곳 출장 중에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직접 묻길래, 청일전쟁에 대해 읽고 있다고 말했더니 J시장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의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녁식사 시간에는 그곳이 유비가 세운 촉(蜀)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삼국지를 안주삼아 이야기했는데 필자가 제갈량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장수(長壽)에는 지장 있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필자는 두 가지 책으로 J시장에게 경계와 화합의 메시지를 던졌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중국 산동성 W시의 경제국장이 개인적으로 한국을 와서 필자의 사무실을 깜짝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탁자 위에 홍루몽(紅樓夢)이란 중국 소설책을 보더니 ’이 책이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만리장성과도 바꾸지 않는다.‘ 라며 책(홍루몽)의 가치를 말해주었다. 중국 S시의 M부비서장과도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그도 홀로 안산시를 방문하여 점심식사를 함께했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소설 수호전(水滸傳)으로 화제가 옮겨갔고. 외모가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던 그와의 대화는 책 이야기로 인해 화기애애할 수 있었다.

3개월 후 M부비서장은 공식 초청장을 보내 왔고 필자는 S시를 방문하고 우호도시협약을 체결 할 수 있었다. 서울에 주재하던 중국외교관들과는 청일전쟁의 시발점이었던 풍도 앞바다를 함께 돌아보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L외교관은 박정희대통령 전기(傳記)를 읽고 감명 받았다며 필자에게 묻길래 덩샤오핑(鄧小平)에 대해 이야기하니 경제를 살린 지도자란 공통점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L외교관은 안산시에 중국영사관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중국외교부로 돌아갔다.

일본공무원들과도 일화가 있다. 우호도시를 맺기 위해 협의하던 S시의 공무원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도쿠가와이에야스」을 화제로 꺼내들었다. 대망에는 일본인들이 존경한다는 많은 무사들의 인간상(人間相)이 드러나 있는데, 그들보다는 일본의 근대화에 막후역할을 한 사카모토 료마가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 공무원들과의 대화는 그다지 회심탄회하다는 느낌보다는 사무적이란 느낌이 많았었다.

이렇듯 서책방담(書冊放談)은 초면인 사람과도 국경과 이념을 넘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자연스레 마음이 통하게 되어 공감대를 갖게 하는 대화의 윤활유나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고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이 여행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이제 독서의 계절이다. 매미소리가 들리는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읽는 책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自然合一)그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조선이 버린 천재 허균은 ’천하에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반반인데 온통 이로운 것은 책뿐이다.‘ 실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호 이익선생은 ’독서는 스승이다.‘ 연암 박지원선생은 ’萬事讀書窮理(만사독서궁리, 모든 일은 책을 읽고 이치를 알아냄)을 신조로, 정민교수는 「오직독서뿐(2019)」에서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독서 뿐’이라고 말했는데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至樂書樂(지락서락)‘, 책을 읽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다. 올 여름도 삼국지(三國志)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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