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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제종길의 우리가 사는 도시이야기 23

  • 입력 2019.05.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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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명한 도시가 시민들을 활기 있게 만든다.

도시를 운영하는 정책책임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공직자나 시민들 모두가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인 까닭이다. 예를 들면 이정표나 안내 지도판 등 공공정보시스템이 허술하고 일관적이지 않아 혼동을 일으켜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방문객인 한 도시에서 길을 찾는다고 가정하자 시민들조차 도시의 구조도 모르고 바른 지도나 제대로 된 알림 간판이 없다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도시가 좀 더 이해하기 쉽고 도시생활이 즐거워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면서 도시재생을 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가 있다. 영국의 서남부의 중심인 해안 도시 브리스톨(Bristol) 이다.

브리스톨은 하구에 있는 수로가 많은 도시로 도시 중심에 항만이 있었다. 항만 주변에는 큰 화물선들이 들어와서 하적하던 곳으로 1960년대까지는 공장과 창고들이 많았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시 폭격과 이후 도시계획 없이 건설된 도로 시스템으로 내부 구역들이 서로 단절된 느낌을 주었고, 도시 이미지도 모호해졌다. 항구를 낮아지는 수심 때문에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자 그 자리는 버려진 공간으로 방치되었었다.

1990년부터 과거 항만을 포함한 도심의 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간적·물리적으로 변화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도시 브랜딩과 이미지를 외부와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쉽게 인지하는 도시, 즉 선명한 도시 프로젝트(BLC: Bristol Legible City)의 시작이었다.

도시에서 찾아다니기 힘든 장소를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지역마다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사업을 착수하였다. 먼저 도시를 도심과 인접한 지역으로 나눈 후 구역 특징을 부여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심을 세 구역 - 항구였던 구역, 기차역, 쇼핑센터가 있는 상업지역으로 나누었다.

처음 착안한 것은 사람들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어디를 갈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이미지 영역과 동선을 파악하였으며, 그 동선에 맞는 지도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였고, 산업 그리고 전통과 문화, 주 생산품 등을 고려하여 그와 관련된 브리스톨 고유의 색을 찾아내었다. 이 사업에는 디자이너, 예술가, 도시계획가, 지질학자 등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안내판도 정보를 구조적으로 만들어서 정보제공 위치와 확대된 그림, 거리의 이름, 거리에 속한 주요 지역을 나타냈다. 글자체로 새로이 개발했으며, 안내판에 사용된 색들도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선택하였다. 버스와 기차로 서로 다른 대중 교통수단으로 환승하는 곳에서도 정보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안내판을 디자인하였다.

멀리서도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가는 가장 편한 동선을 시민 또는 방문객 스스로가 결정하여 표지판이나 안내지도를 보고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한편 사람들이 랜드마크를 통해 위치를 찾는 것에 주목하여 시내의 150개 건물을 랜드마크로 선택하고, 시내의 주요 목적지들을 중심으로 지도와 사인 시스템을 선택하였다.

지도에서는 랜드마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주요 기관이나 건물 등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아이콘 심벌을 사용하여 표시했다. 더나아가 브리스톨과 관련된 열 가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내를 다닐 수는 모바일 앱을 개발하였는데, 이 열 개의 루트를 대상으로 공공예술품도 함께 설치하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 중심 도시디자인 전략을 수립하였다는 점이다. 안내판을 보는 사람 기준으로 화살표 방향을 설정하고, 읽기가 쉽도록 색상을 대비하는 등 사용자 친화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시민과 방문객이 활동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여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하려는 정책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보행자 중심도시 만들기를 위해 가로환경도 개선하였다. 과거 자동차 중심의 거리를 보행자 중심의 광장과 공원 등 공공공간으로 개편하고, 도시 공간 사이의 연결, 블록 간의 연결, 도시 상권 간의 연결, 사람 계층 간의 연결을 사람이 중심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도시계획을 조정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녹지 공원을 확보하자 사람들이 원활하게 일정한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고, 도시의 활력까지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생태 도시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까지 잡혔으며, 관광객들도 늘어났다.

브리스톨 시는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들을 점검하고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해결하여 확대해 나갈 예정이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2016년 당시는 도심을 중심으로 위에서 언급한 도심의 사업은 이미 완결하였고, 향후 브리스톨 전체로 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모바일 앱을 통해 시민의 이동 수단(기차, 버스 등)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존 지도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빌딩 내부까지 확인하고 안내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었다.

또한, 어두운 곳에서 잘 볼 수 있는 안내판 지도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등 사업을 끊임없이 확대해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브리스톨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성공 사례가 잘 알려지자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서울과 안양, 수원 등 경기도의 여러 도시가 적극적으로 공공디자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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