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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5화. 한국은 머물고 싶은 나라입니까?

  • 입력 2019.06.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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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5화. 한국은 머물고 싶은 나라입니까? (기록노동자 희정)

 

고려인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하며 한국에 오기 전 이야기를 물어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요?” 기술자, 교사. 의사. 그런 직업들을 말해준다. 다음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대답이 단순해진다. “회사요.”

무슨 회사요? 잘 모르겠어요.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예전처럼 말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듣지 못해도 추측은 가능하다. 국내 고려인의 70% 가까이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 조사> 2014. 재외동포재단)

보통 공단 내 제조업체나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무슨 일을 하세요? 부모 세대에게 물으면 서툰 한국말로 답해준다. “핸드폰 부품 만들어요.”

 

*최저임금 일밖에 없다

2007년 구소련 지역 동포들에게 방문취업비자(H-2)가 발급된 후, 국내 고려인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출입국관리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4만 명이라 추정되던 수가 5년 사이 2배 넘게 늘었다. 안산 땟골마을(선부동), 광주 고려인마을(월곡동) 등 공단 인근 저렴한 주택가에 자신들만의 거주지도 형성한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 비자(F-2)도 있지만, 접근이 어려워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50% 이상이 방문취업(H-2) 신분이다. 재외동포비자는 발급기준이 대학졸업자, 법인기업대표, 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등으로 한정되기에 취득이 어렵다.

재외동포비자를 받았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앞서 많은 고려인들이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재외동포비자는 국내 취업질서 유지를 이유로 들며 단순노무직취업을 금하고 있다. 그러니 몰래 일한다. 그것 밖에 일자리가 없다.

 

*러시아에서처럼 일하면 안 돼요

특히 문제는 언어. 한국어를 배울 새도 없이 취업부터 한다. 강제이주 세대 부모들이 짐 보따리 한두 개를 이고 중앙아시아로 간 것처럼, 한국에 온 이들도 번번한 세간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낯선 곳에선 모든 것이 비용이다. 우선 돈부터 번다. 언어를 배울 기회는 멀어지고, 파견-일용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직장생활은 어떠냐고 물으니, 한국 거주 10년차인 따냐가 말한다. “한국인 빼고 다 똑같아요.” 무슨 말일까. 직장 동료 대부분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라 했다. (국내) 한국인은 얼마 없다. “한국인 빼고는 다 무시당하는 거 똑같아요.”

“러시아에서처럼 일하면 안 돼요.” 컨베이어벨트 속도는 국적 상관 않고 평등하게 빠르다. 지난 2년간 전자회사에서 일했던 레라는 말한다. “쉬는 시간 하나도 없어요. 부품이 30초마다 나와요. 그런데 기계가 3개. 제품 넣고 스타트 누르고, 두 번째에 넣고 스타트 누르고, 3번째 기계 하고 나면, 첫 번째 기계에서 (완성제품) 나오고 있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속도로 일해본 적 없다.

 

*3명 중 한 명은 억울한 일

한국에서 살기 어떠냐고 물으면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있다. “친절하다.” 한국 사람이 친절해요? 되물으니, 러시아에서는 상점에 물건을 사러가도 퉁명스러운 대접을 받고 온다고 했다. 한국 사람은 친절하다는데, 왜 일터에서는 친절을 보기 힘들 걸까. 그곳에는 체불과 법 위반과 모욕과 고함이 있다. 한국에 온 첫 달에 임금체불을 당했다는 아냐는 그럼에도 ‘친절한 한국’을 포기 못한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안 좋은 곳, 안 좋은 사람을 만난 거라 생각을 해요.” 과연 그럴까. 긍정적 사고는 그녀를 한국 땅에 정착하게 하는 힘이지만, 고려인 실태조사가 말해주는 현실은 심상치 않다.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 응답자 중 30%가 부당해고, 27%가 임금체불을 경험했다고 한다. 3명 중 1명은 일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이야기다.(<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 조사> 2014. 재외동포재단)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부당해고 사례를 보자. 따냐에게 10년 간 일하며 마음에 맺힌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말대꾸’ 했다고 그날로 해고된 일을 꼽는다. 불량이 났다고 욕을 해서 서툰 한국말로 해명했다. 관리자가 나가라고 소리 질렀고 나가야 했다.

국내에 파견・용역・비정규직 노동자가 5명 중 1명 꼴이라 한다. 파견노동과 도급용역 비율은 갈수록 늘어난다. 사회적 위치가 낮은 고려인들은 가장 빨리 파견인력이 된다. 파견업체(직업소개소)를 통하지 않으면 일을 구할 수 없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온다. 사장님이 친절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가라하면 가야 하는 사람을 모아 놓고 친절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조선족 동포(70만), 그 다음은 고려인(8-9만)이다. 동포라 말하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지원하지 않는다. 장기체류도 허락하지 않는다. (방문취업비자는 4년 10개월 동안 유효하다) 장기체류를 허락한 재외동포비자는 정착지원 없이 이들에게 취업제한만을 둔다.

 

*말을 잃은 독립유공자 후손들

요사이 경기침체로 산업단지마다 일거리가 줄고 있다는 소리가 자꾸 들린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밑바닥 노동. 그곳에 고려인들이 일한다. 취업을 걱정해준다며 이렇게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고려인들은 한국말 못하니까 불만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일만 한다고. 그러니까 “사장님들 고려인 쓰시라”고.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연설하여 회자된 말이 있다. ‘고려인 1세대는 모두 독립유공자’라는 것. 1세대의 이주지인 연해주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정치적으로 각성된 이들이 모였다. 창의소, 13도의군, 권업회 등 독립운동 단체를 형성했고 한편으론 볼셰비키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혁명을 옹호하고 일본군은 물론 제국주의 백군과 전쟁을 치렀다. 이주민이 정착을 위해 기본으로 필요한 언어, 주거, 보육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이 고려인들에게는 미비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가?

안산 고려인지원센터는 저녁이 되면 더욱 북적거린다. 학생들의 방과 후 수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을 마치고 한글수업을 들으러 오는 고려인들이 있다. 그러나 주 6일 ‘한국식’ 노동강도로 일하면서 퇴근 후 수업을 들을 만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가 얼마나 될까.

일터에는 고려인을 비롯해 외국 이주 노동자들만 가득하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점점 한국말이 능숙해진다. 결국 이들 사이 소통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문화 가정(F-6 비자)에는 방문수업 등 맞춤형 한국어교육이 진행된다. 다문화가정이 받는 보육, 의료 등 지원이 고려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실컷 내게 관리자의 폭언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어떤 이는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후회 안 해요. 우리 어머니 우즈베키스탄에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러시아에 사는 다른 언니들 못 왔어요. 비행기 별로 없고 갑자기 돈 구할 수도 없어서. 나는 갈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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