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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6화] 나는 환대받는 존재인가. 고려인 청소년들이 묻는다

  • 입력 2019.06.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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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6화] 나는 환대받는 존재인가. 고려인 청소년들이 묻는다  (기록노동자 희정)

 

“우즈베키스탄 집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차에서 창밖 보고 있었어요. 그때 나… 생각했어요. 이제 여기 오랫동안 못 올 거 같아.”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저 말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고려인 발레리야는 26살에 방문취업비자(H-2)를 받아 한국에 왔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과 장시간 노동이었다. 이제 한국에 온 지도 10년이 됐다.

그럼에도 자신은 한국사회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라 했다. 그 시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가 닿는다. 그는 주말이면 고려인지원센터에서 청소년들에게 농구를 가르쳤다. “저 아이들 여기서 한국인처럼 지낼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주 어릴 때 오지 않은 이상 가능할까?”

그가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국에 와서 학교를 5년, 7년 다녀도 또래들과 다른 티가 난다. 다른 것은 한국어 발음만이 아니다. 어릴 때 왔다고 해도 낯선 공간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초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와 지금은 한국에서 고등학생이 된 고려인 청소년들을 만났다.

 

*한국에 오다

고려인들이 어릴 적 가족들에게 묻는 말이 있다. “우리 한국인이라면서 왜 러시아에 살아요?” 대답을 듣고 나면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한국은 어떤 나라에요? “부모님이 그랬어요. 한국에 가면 다 우리처럼 생겼다. 그런 말 자주 들었어요.” (제냐, 17살)

한국에 온 고려인 청소년의 경우, 몇 년간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지낸 경험들이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한국으로 일하러 간 것이다. 몇 년 일하다가 이곳이 자녀를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이 들면 가족 단위로 이주한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7년 일한 후에 저를 데리러 왔어요. 한국에 왔을 때 미래세계에 온 것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티마, 19살)

그러나 한국은 언어가 다른 나라였다. 학교에 갔지만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한글교육을 지원받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친구는 사귈 수 있었을까?

 

*다름을 느끼다

18살 니키에게 정체성을 물었더니 엉뚱한 답변이 한다. “저를 호모사피엔스라 생각해요.” 일단 웃고,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저는 사람을 민족으로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사람이 사람인데, 왜 국적이나 인종으로 따지나요?”

니키는 한국사람들이 보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외국인’. 자신이 받고 있는 외국인 취급을 알고 있다. 니키가 자신은 사람을 민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까닭이 여기 있는 듯하다.

한국은 인종, 민족, 국적(나라)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사회이고, 그래서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난 정체성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받아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에게 근접한 민족(인종)적 타자는 도심에서 보는 관광객과 영미권 영어강사,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 나오는 ‘대한외국인’ 정도다.

대다수의 이주민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분류된 채 눈길 닿지 않는 곳에 머문다. 몇 년 일하다 제 나라로 떠날 존재로 인식된다.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니 고민도 없다. 고민의 부재는 고려인이라는 복합적인 역사를 지닌 존재 앞에서도 드러난다. 고려인들이 눈앞에 나타나면 우리는 편리하게 ‘한민족’과 ‘외국인’이라는 개념을 공존시킨다. 사실 그 말이 지닌 의미란, 너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니키는 요즘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연설에 ‘꽂혔다’고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알려진 연설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설보다는 마틴 루터 킹이 가진 소수자성에 끌린 모양이다. “마틴 루터 킹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미국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어요. 우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도 민족은 같은데, 같은 민족 보장을 받지 못해요.”

니키는 “이것도 인권 문제잖아요?”라고 되묻는다. 같은 민족이라 인정받지 못하고 편견의 대상이 된다. 차별이 아니어도, 이들은 정체성만으로 충분히 혼란스럽다. 특성화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제냐는 자기 정체성을 ‘궁금하다’고 했다.

“저도 궁금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인이라 해야 하나, 우즈베키스탄는 소련이었잖아요. 그러면 러시아라고 해야 되나.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의 나라

그래도 제냐는 한국에 가면 전부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우리처럼’ 생기지 않은 고려인 4세들도 있다. 티마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다. 하얀 피부와 짙은 눈, 티마의 얼굴에는 서양권 외모의 특징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티마가 자신을 ‘어디 사람’이라 소개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외국인이라고 여기고 영어로 소통하려고 해요. 국적을 말하면 깜짝 놀라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왜 한국 국적이냐고 물어요. 그러면 귀화했다고 해요.”

잘 모르거나 대화를 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자신을 서양인이라고 여기면 존중해주는데, 고려인임을 알게 되면 질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왜 얼굴이 다르냐, 왜 한국말은 못하냐. 무례한 질문도 온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미래를 물었다. 승무원, 통역사,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연하게도 직업들이 다 밖(국외)으로 나가는 일이다. 왜 그 꿈을 가졌냐고 물으니, 제냐는 말한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을 때 멋있어 보였어요.”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외교관이 꿈인 니키는 ‘다른 나라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라고 답한다. “사람은 소중한데, 문화를 알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그래서 다른 나라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요.”

왠지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니키는 고려인이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에서, 자신과는 어딘가 다른 또래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7년을 지냈다. 니키는 이해받고 싶기에 이해하려 하는 걸까. 이해받지 못하기에 한국이라는 나라 밖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올해 1월, 법무부는 재외동포 인정 범위를 4세까지 확대하는 재외동포법 개정을 예고했다. 19살이 되면 한국을 나가야 하는 위험에서 한결 멀어졌다.

 

*나는 환대받는 존재인가

물론 이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비자 자격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좀 낯선 답을 한 청소년이 있다. “일하는 시간 줄여야 해요.”

부모가 늦게까지 일을 한다. 러시아에서의 어린 시절과 다른 풍경은 그것이다. 부모의 삶이 달라졌다. 이들 부모는 한국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의 고민만큼 중요한 것은 ‘나는 환대받는 존재인가’ 라는 질문이다. 고려인 청소년들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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