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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흥선 칼럼] 諦日紀行 (체일기행) (1)

  • 입력 2024.02.0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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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諦日紀行 (체일기행) (1) 

요즘 많은 사람이 일본여행을 다녀오고 있는 것 같다. 필자도 연초에 일본 여객기 폭발사고 때 5분 만에 370명 승객 전원이 무사히 탈출하여 세계 언론으로부터 기적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일본을 다녀오고 싶은 유혹이 있었던 터에 엔저(円低) 분위기에 편승하여 처음으로 현해탄(玄海灘)을 건넜다.

과거나 요즘이나 일본을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결한 도시와 사람들의 친절에 그동안의 선입견(先入見)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진실일까 하는 생각으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생각으로 차가운 심장과 솔개 같은 눈으로 직접 체험해 보기로 하고 일본어를 하는 딸과 아내와 셋이 배낭여행으로 체일(諦日, 일본을 자세히 살펴봄)의 여정에 올랐다.

간사이공항(關西空港)에서 연결되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필자가 처음 본 것은 동전으로 사용하는 옛날 녹색 공중전화기였다. AI(인공지능) 21세기 최첨단 디지털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지금 수십 년은 묵었음 직한 공중전화기를 2대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대합실 중앙에 놔두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보다 디지털발전이 한 발 느리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과학기술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전시용(展示用)일까?

17세기 초 에도막부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고도(古都) 교토(京都)의 시내에서 연등거리(燃燈距離)로 연결되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는 연초라서 그런지 액()과 화()를 면하고 무사태평(無事太平)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종교란 역시 믿기 나름이다. 고대 로마에도 30여 만의 신()을 숭배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도 어느 집이나 조상신(祖上神)을 숭배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이해하면 된다.

교토(京都) 시내와는 다르게 신사 주변의 주택가 거리는 초저녁임에도 한적(閑寂)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승용차와 자전거는 모두 묘기라도 부린 듯 빈틈없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회가 된다면 주차방법을 정말 보고 싶었다.

어느 음식점 문 옆에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 중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그가 이 집에 잠시 머물 때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결투 끝에 목숨을 건진 것을 기념하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렇다. 기념하는 게 꼭 공공기관에서 하는 행사로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언젠가 TV먹방으로 일본 라면을 본 적이 있어 저녁 식사는 라면에 생맥주 한 잔을 곁들여 먹었는데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한국 라면보다 맛은 덜한 것 같았지만 얇게 썰어 얹은 돈육의 식감이 나름 생맥주 안주로 괜찮았다.

이 식당은 주문도 무인(無人), 식후에 식대 지불도 무인결재였다. 현금과 카드 모두 사용 가능하다. 순간 낮에 보았던 간사이 공항 기차역의 공중전화기 생각은 한 번에 사라졌다. 교토 중심부를 흐르는 카모규강(鴨川)변의 밤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천년고도(千年古都) 교토(京都)에 아침부터 겨울비가 마치 봄비처럼 촉촉이 내려 고풍(古風)에 운치(韻致)를 더했다. 필자는 아침 러시아워를 피해 일찍 대중교통으로 아라시야마(嵐山)에 도착하여 관광단지를 도보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운무(雲霧)가 낮게 아라야마시(嵐山)를 감싸고 넓은 계곡물은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계곡 옆 공원에 과거 주은래(朱恩來) 중국 총리가 방문한 기념으로 시비(詩碑)가 있는데 일본 정부와 교토시 고관 명칭은 있었지만, 주은래(周恩來)의 시문(詩文)도 없고 언제 세웠는지도 없었다. 기록에 철저한 일본인들이 설마 실수로 누락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고 어떤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제복 차림에 황색 완장을 찬 노인이 행선지를 묻고는 버스노선 번호를 알려주었다. 아마도 버스정류장의 질서유지와 안내 같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배치된 듯하였다. 이런 노인들은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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