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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장기준 기자

[임흥선 칼럼] 체일기행(諦日紀行) (2)

  • 입력 2024.02.19 09:45
  • 댓글 0

 

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체일기행(諦日紀行) (2) 

 

교토(京都)의 대표적인 관광유적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니조성(二條城)에 왔다. 16세기 피비린내 나는 일본의 센카쿠시대(戰國時代)를 종식시키고 메이지유신 전까지 265년간 일본의 태평성대를 이끈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가문이 일본 천하를 통치했던 심장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그는 몰락해가는 미카와국 오카자키성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2살 때 모친인 오다이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고 5세 때 부친인 마쓰다이라 히로타다는 가신의 칼에 살해당하는 등 비운(悲運)의 연속이었다. 6세때부터 13년간의 적진에서 인질생활을 겪은 이에야스는 절치부심(切齒腐心) 인고(忍苦)로 가문을 부흥(復興)시키고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키며 강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주군이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혼노지(本能寺)의 변으로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살해된 후 토요토미 가문의 권력을 손에 쥔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에게 센카쿠하자마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계자인 히데요리를 오사카성 전투에서 멸망시키고 센카쿠시대(戰國時代)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에야스는 일본인에게는 인내(忍耐)의 표상(表象)으로 알려져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고 하고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참고 또 참아야 한다.’라며 미카와의 고아라는 별명처럼 파란만장했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자가 됨으로써 대역전 우승과 같은 그의 성공신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동서 0.5km, 남북 0.4km의 장방형(長方形) 대지에 건축된 니조성의 사방(四方)은 깊고 넓은 해자(垓字)로 둘러 외부에서 침입이 쉽지 않아 보였다. 검은색의 전각(殿閣) 지붕은 비를 맞으며 묵직하기도 음산해 보이기도 했다. 성내 전각은 6개 동으로 쇼군이 머무는 궁을 니노마루 궁전 내부는 33개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전체가 마루 복도로 연결되었는데 사람이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안내서에는 휘파람새 울음소리라고 하지만 이는 누가 걸어보더라도 자객(刺客) 등 외부침입자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33개의 각 방에는 호랑이, 표범, , 독수리, 기러기, 노송, 매화 벚꽃, 단풍, 버드나무 등 1300여 점의 국보(國寶)로 지정된 벽화(壁畫)는 화려하다기보다는 실물처럼 사실화(寫實畵)에 가까워 우리나라의 동양화와 다른 점 인 것 같았다. 쇼군의 내실로 사용했다는 백서원(白書院)‘과 외빈(外賓)이 오면 응접(應接)했다는 흑서원(黑書院)‘은 한자(漢字)의 뜻과 부합되는지 필자의 지식으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다.

또한 사신(使臣)이 머물던 방의 벽화는 호랑이와 표범 그림이 있는데 지나치게 위압감을 주려는 것 같아 왠지 예절과는 거리가 먼 듯했다. ()의 외부정원은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조성되어 있었는데 상념(想念)에 젖어 촉촉한 비를 맞으며 걷기에는 괜찮은 공간이었다. 1867.11.9. 이곳 니조성에서 대정봉환식(大政奉換式)이 열려 일본의 봉건시대는 드디어 막을 내리고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서구화하며 근대화의 길로 나서게 된다.

2024. 2. 4. 실시되는 교토시장 선거홍보 전광판이 버스정류장 모니터와 간결한 입간판으로 설치된 것을 보고 플래카드가 난무하는 우리나라의 선거홍보와 정말 비교가 되었다. 일본의 지자체장 임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보궐선거로 당선이 돼도 법정임기를 수행해야 하므로 지자체장 선거가 1년 내내 실시 된다고 한다. 사전 투표 기간이 10일간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길었다.

저녁 시간 교토 시내 번화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상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음식점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필자의 가족 3인도 30여 분간을 자리가 있는 곳을 찾다가 겨우 스키야끼(일본식 샤브샤브)와 사케 한 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본음식점은 어디나 떠들썩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하다.

식당뿐만 아니라, 버스 안이나 전철 내에서도, 관광지에서도 큰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나라가 바로 일본인 것 같다. 시내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둘째 딸이 옆에 앉은 일본인 중년여성과 한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녀가 딸에게 엄마, 아빠가 매우 인자하게 생기셨다.”라고 말했단다. 필자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혼네(속마음)일까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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