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오피니언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흥선 칼럼] 제호지락(製號至樂)

  • 입력 2023.09.21 10:21
  • 댓글 0

 

 

문해. 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문해. 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제호지락(製號至樂)

 

상록수역 근처 가석한문서예연구소(嘉石漢文書藝硏究所」에 가면 대한민국 서예 명인인 가석 이지숙 선생의 많은 서예작품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선생의 책상 뒤에 독락(獨樂 홀로 즐김)’이 있고 우측벽에는 장락(長樂,오랫동안 즐김)이란 글씨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가석(嘉石) 선생은 평생을 서예와 한학연구에 매진해온 분으로 서울과 안산에 원()을 두고 작품활동과 후학양성에 식지 않는 열정을 갖고 계시는데 연구소에는 교육자 출신인 김인호 선생을 비롯하여 김명동 교수 등 서예와 한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소담(疎談), 소담(笑談) 대화를 나누며 글도 쓰고 독서도 즐기는 서실(書室)인데 필자는 이곳을 방락(房樂)’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2500여 년 전 장자(莊子)가 말했듯이 이 세상에 정말 ()’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떼를 지어 쫓아가는 부귀(富貴)니 영화(榮華)니 장수(長壽)니 하는 것이 낙()일까?

일찍이 도교(道敎)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장자(莊子)는 무락(無樂,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지락(至樂, 진정한 즐거움) 이라고 역설했고, 유가(儒家)의 대표인 공자는 ’(知之者不如好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 하고), 好之者不如樂之者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 하다)‘라고 하여 즐기는 자를 최상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군자삼락(君子三樂)에서 첫째 즐거움(一樂)으로 부모의 구존(俱存, 모두 살아계심)과 형제의 무고(無故), 둘째 즐거움으로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으며 아래로는 인간에 부끄럽지 않음(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셋째 즐거움(三樂)으로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이라고 했다.

공자는 천하의 왕() 노릇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王天下不與存焉). 또한, 공자는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仁者樂山智者樂水)’했고, 인간의 품성을 ()로 일어나고 (興於詩), ()로 서며(立於禮), (, 음악)으로 완성된다. 라며 자 고귀하게() 썼다.

한자로 ()‘은 원래 악기(樂器)를 나타낸 상형문자(象形文字)로 노래(), 즐거울(), 좋아할 요로 쓰이고 있는데 필자의 나이 60대 중반에 ()이 들어간 지락(至樂)’이라는 호를 자작(自作)하였다. 그 전에는 안산용신학교 김경옥 교장과 식사 중에 마늘이 화제가 되어 소산(小蒜, 작은 마늘)이라는 호를 일 년여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안산시 평생학습원 한문서예교실 강사이신 묵연(墨然) 노선숙 선생의 도움을 받아 지락(至樂)’을 필자의 서예 전시 첫 작품(海內存知己天涯若比隣, 해내존지기천애약비린, 천하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과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가겠다.

:초당(初唐)4걸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왕발(王勃)의 시()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 )에 기명하고 낙관(落款)하였다. 조선시대 정치가이자 추사체를 창제한 한국서예의 대가 김정희 선생은 책에 따라서 차이가 다소 있지만, 호가 무려 350에서 많게는 500개를 썼다고 하니 웬만한 좋은 글은 거의 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울러 18세기 암울했던 조선(朝鮮)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개혁을 추구한 정약용 선생도 다산(茶山) 외에 열다섯 개 정도의 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선생의 불후의 대표작인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서문(序文)에는 다산(茶山)이라는 호 대신 선생이 태어난 경기도 광주(현재의 남양주)에서 부른 한강 지명인 열수(洌水) 정약용(丁若鏞)’이라고 기명하였으며 말년에 쓴 자찬묘비명에는 사암(俟庵)’이라는 호를 썼다.

이처럼 정약용 선생은 글과 그림에 쓴 호가 상이(相異)하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이 없다고 등 한다. 그럴때마다 필자는 장자의 지락무락(至樂無樂)을 말한다. 어쩌면 낙()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낙()일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신체 건강하고 우리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소소한 ()’도 지락(至樂)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