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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투데이안산

(사)경기한국수필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작품 임동균의 '적송'

  • 입력 2023.12.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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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균
임동균

 

적송

나는 적송赤松 으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세상 살이를 마감하면 적송으로 지은 옷을 입고 적송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적송들로 둘러싸인 동해안 산자락이요 그곳에서 말년을 보낼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고향 사람들은 모두 적송 숲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뒤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 고향을 떠났었다. 마치 왕피천에서 헤엄을 배워 머나먼 바다로 떠나는 연어들처럼 뿔뿔이 객지로 떠났던 것이다.

얼마전 식물도감을 뒤져보았는데 적송이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나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우리 고향쪽에서는 겉이 붉고 얇은 껍질로 덮였으며 공이가 별로 없이 쭉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적송이라 불렀다. 적송을 더러 황장목이라거나 춘양목 혹은 금강송이라고도 하고 미끈하게 빠진 자태에 빚대어 미인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적송은 바위로 뒤덮인 험준한 산이나 골짜기등 척박한 환경에서 아주 느리게 자란다. 때문에 나이테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목질이 강하고도 부드러워 옛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데 사용되었던 최상의 목재이다.

그렇다고 우리 고향쪽에는 소나무가 적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변가에 길게 늘어서서 북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해풍을 막아 주는 해송도 있고 육송이라 불리는 조선소나무도 있다.

하지만 대세는 적송이다. 해송은 구불구불할 뿐만 아니라 결이 고르지 못해 목재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육송은 공이가 많고 적송에 비해 무르며 집을 지은 후 벌레가 먹는 흠결 때문에 주로 외양간이나 헛간을 짓는 용도로 사용한다.

그래서 내고향 마을인근 삼십여리는 형편에 상관없이 사람 사는 집은 대개 적송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자연보호를 내세우며 적송 벌목을 엄히 제한하지만 우리가 태어난 5~60년 전에는 집짓는 목재로 쓰기 위해 적송을 몰래 베는 것은 관에서도 대충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송으로 지어진 집들이 안타깝게도 십여년 전부터 하나 둘 헐리고 있다. 오지로 소문난 변방인 내 고향에는 변변한 공장하나 없어서 태어나 물리物理만 트면 모두 대처로 나갔다. 그때 고향을 떠났던 이른바 베이비 부머들이 객지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적송으로 지은 낡은 빈집을 부수고 콘크리트로 새집을 짓고 있다.

가난으로 점철되었던 어린시절의 아픈 추억들도 빈집과 함께 헐리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 길들여 진, 도시사람이 다된 그들은 내가 언제 이런 비좁고 볼품없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냐는 듯 굴삭기를 동원하여 삽시간에 허물어 버린다. 서까래며 기둥으로 버티고 섰던 적송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나 뒹군다. 팔려가는 큰 소의 울음소리같다.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마지막으로 모실 관을 짜는데 이때도 적송을 사용했다. 상갓집 한켠에 집안 장년들이 목도로 운반해 온 엄청난 굵기의 적송을 켜서 관을 짜는 것이다. 먼저 땅바닥에 누운 큰 덩치의 적송을 이리저리 굴리며 공이가 없는지 살핀다. 어른 두세명이 자기키정도 길이의 참나무 막대기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어느쪽을 상판으로 할지를 가늠한다.

이 자리에는 문중어른들과 상주들이 참여하고 나무를 켤 거도장이鋸刀匠人가 작업 방법등을 설명한다. 망자가 한평생을 마감하고 쉴 집을 산자들이 지어 주는 것이다. 아무리 곧게 자란 적송이라도 관으로 쓰일 만큼 큰 나무인지라 몇 개의 옹이는 있기 마련인데 옹이는 반드시 관의 윗쪽으로 가도록 한다. 나무의 생김새와 말구 末口의 크기등에 따라 널의 두께가 결정 되면 곧 톱질이 시작될 적송 나무둥치 앞에 젯상이 차려진다. 멍석을 깔고 포 한 마리와 백미한사발 그리고 냉수 한 그릇으로 차린 상을 마련한다.

이때 사용하는 상 은 반드시 땅바닥에 놓인 적송나무보다 낮아야 한다. 준비가 끝나면 남자상주들이 모두 나와서 망자의 집을 지을 적송나무 둥치 에 대고 곡을 하면서 절을 한다. 그리고 준비한 봉투를 상위에 놓고는 거도장이에게 예를 표한 뒤 뒤로 물러난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면 거도장이는 먹을놓기위해 적송나무 둥치 한 쪽을 도끼로 길게 쳐 낸다. 도끼질이 끝난 적송에서는 코를 찌르는 솔향내와 함께 투명한 송진이 이마의 땀방울처럼 돋아난다. 송진은 어지간히 굵게 맺혀도 여간해서는 흘러내리지 않는다. 도끼질로 허옇게 드러난 나무둥치속살에 먹을 놓는다.

먹줄 놓는 작업이 끝나면 장정 대여섯명이 힘을 모아 거도장이의 지시에 따라 적송둥치를 켜기 좋게 그의 가슴높이로 밀어 올린 후 거멀쇠로 고정시킨다. 이윽코 거도장이가 자기 덩치 만한 반원모양의 톱으로 널을 켜기 시작한다. 가끔씩 톱질을 쉴때마다 망자의 자손들이 번갈아 가며 거도장이에게 막걸리를 따른다.

또 약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나무 둥치에 박혀 있는 톱 위에 올려 놓기도 한다. 이때부터 상가에는 적송을 톱질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솔향과 함께 빈소쪽에서 피어오르는 특유의 향 냄새등 두 종류의 향기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장례에 쓸 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릉골짜기에서 자란 적송을 베어오는 것이 상식이다. 구릉진 골짜기는 응달이어서 토양이 기름지기 때문에 적송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곧게 자란다. 따라서 죽은 옹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패질을 해 놓으면 그 결이 송진과 수분을 적당히 머금어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또한 골짜기의 적송은 바위산에서 자란것보다 목질이 부드러워 관을 짜기가 쉽다. 내고향인근에는 집안 어른들 중 곡기를 끊어 임종이 가까워 오는 분이 있으면 급히 두가지를 준비한다. 하나는 미리 산에가서 관으로 쓸 적당한 나무를 베어 단 며칠이라도 건조시키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상객들을 대접할 안주거리 건어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적송은 바위 위에서도 자란다. 내고향 울진 소광리에 가보면 화강암으로 뒤 덮인 왕피천 골짜기를 따라 수백년된 적송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 왕피천이 불영구곡을 따라 동해로 동해로 흘러 내리다가 모래톱을 만나 삼각주를 이루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므로 적송이야 말로 오랜 벗이요 이웃 같은 존재다.

나는 다행히 적송으로 지어진 오래된 기와집을 잘 보존해오다가 얼마전 대수선을 했다. 객지살이를 마감하면 모두 접고 내려가 오랜친구와 같은 적송들과 벗하며 살다가 그들 발 뿌리에 묻히고 난 뒤 그 숲의 정령精靈이 되어 밤마다 그들과 어울려 함께 춤추며 노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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