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기자명 투데이안산

[임흥선 칼럼] 체일기행(諦日紀行)(4)

  • 입력 2024.03.13 18:18
  • 댓글 0

 

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문해.한국어교사/안산용신학교 교사

 

체일기행(諦日紀行)(4) 

 

교토에서 1시간 남짓 전철을 이용하여 오사카(大阪) 도심으로 입성하였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를 관광하다가 부산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오사카는 간사이(關西) 지방의 중심도시이자 일본의 2대 도시로 오사카만()을 중심으로 일찍이 무역과 상업이 번성한 곳으로 교토와는 전혀 다른 마천루(摩天樓)가 즐비한 초현대적 분위기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다니는 모습이 서울 여의도 금융가를 연상케 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시간표를 보니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토, 일요일의 간격이 평일보다 배차 간격이 짧았다. 이는 공휴일에 버스이용자가 더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관광객을 배려한 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성(大阪 城)은 입구부터 많은 인파로 붐볐다. ()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垓字)의 물결은 햇빛에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유난히 빛났다. 오사카성 해자는 교토의 니조성(二條城)과 달리 성을 둘레로 한 내해자(內垓字)와 성의 외곽의 외해자(外垓字) 2중으로 조성되었는데 대략 중국 베이징(北京) 자금성(紫禁城) 해자와 규모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금성 해자를 판 흙은 성 배후에 경산(京山)이란 인공산(人工山)을 만들었지만 오사카성 주변의 해자를 판 흙을 돋아 성()을 축조하였기 때문에 성의 지반이 평지보다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산물인 해자가 관광상품이 된 시대다.

오사카성의 주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흉(元兇)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함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최고 권좌에 올랐던 인물로 수많은 전설(傳說)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야욕에 사로잡혀 1592.4 1598.12까지 우리나라(조선)를 침략하는 무리한 전쟁으로 2()를 잇지 못하고 단명(短命)으로 멸문(滅門)한 정권이다.

그야말로 방약무인(傍若無人)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세키가하라 회전(會戰)을 통해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 옮겨갔지만, 오사카성에는 히데요시의 늦둥이 히데요리가 성장하며 추종세력이 많았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410월부터 16156월까지 20만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하여 오사카성 둘레의 해자를 메우고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죽인 후 오사카성을 불태움으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 통일은 완성된다. 따라서 현재의 오사카성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築城)한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계자인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증개축(增改築)한 것이다.

오사카성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어 최상층인 8층 천수각(天壽閣)부터 내려오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센카쿠 시대(戰國時代) 전시물을 관람하도록 구성이 되어있는데 1615년 여름 오사카성 여름 전투도(戰鬪圖)는 센카쿠 시대의 종식을 보는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필체(筆體)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노부나가의 필체는 성격만큼이나 날카로워 보였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한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서인지 서체 전시물이 별로 없었다. (히데요시는 외교문서도 직접 읽지 못했다는 설도 있음)

도톤보리(道頓窟)는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운하(運河,道頓窟川) 관광 보트를 타려다가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 포기했다.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음식점은 만석이었다. 관광 인파(人波)를 흡수하는 매력은 쇼핑과 먹거리 그리고 강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운하가 전부인 것 같았는데 한마디로 젊은이들의 낙원이랄까, 한마디로 핫 스폿(Hot spot)과도 같았다.

오사카의 야경은 홍콩이나 상하이(上海)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고혹(蠱惑)한 운치가 느껴졌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의 야경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우울함을 달래주는 위안이었다면 현대에는 중요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호텔로 돌아가 사우나로 피로를 풀기 위해 저녁 식사는 우메다역(梅田驛)의 한큐백화점에 들러 간편한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이곳도 역시 사람들로 붐비고 인기 코너는 대부분 매진되어 가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생각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5부 마지막)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