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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아프면 병원에 가는 삶이 미래를 꿈꾸게 한다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7화. 아프면 병원에 가는 삶이 미래를 꿈꾸게 한다 (기록노동자 희정)

 

“개인 사정이요.”

최근 들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소냐(가명)는 이리 대답한다. 타지에 와서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체성 혼란’이라고 우아하게 표현될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정 중 얼핏 스쳐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 쉬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게 이해가 잘 안 되나 봐요.” 나 또한 학교에 가지 않을 핑계 정도로 듣고 말았다. 하지만 대화가 비자와 생활지원 등으로 옮겨가고 소냐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14년 조사이긴 하지만, 국내 거주 고려인 중 62.5%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국내거주 고려인동포 실태조사> 2014, 재외동포재단)

 

아프면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건강보험이 없는 까닭을 물으니 ‘돈’ 이야기를 한다. “70만원이나 내야 한데요. 그 돈이 어디 있어요.”

소냐의 어머니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아니다. 파견 일용직으로 일하는 많은 고려인들이 그렇다. 지역가입은 보험료가 높다. 게다가 입국한 지 꽤 지나 신청한다면 가입 전 보험료가 소급되어 징수되는데, 이것이 첫 달 보험료에 합산되어 나온다. 소냐가 말한 70만원이란, 가입 첫 달에 내야할 밀린 보험료인 듯하다. 무엇을 근거로 나온 액수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냐 가족에게는 큰돈이다. 2-3개월 치 월세와 맞먹는 액수다.

“아프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오전에 병원 갔다가 학교로 오라고 그랬어요.” 병원을 갈 수 없다. 동네 의원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치료비의 70%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런 지원이 소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병원비만 있나. 약값도 부담이다. 담임교사에게 병원 갈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려니 구차하다. 결석처리 된다.

소냐와 인터뷰를 앞두고, 올해 7월부터 한국에 6개월 이상 머무른 외국인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보험은 필요하지만, 고려인들에게는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병원비 일이만 원이 아까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소냐의 가족이 어떻게 매달 10만 원(평균보험료) 가량의 돈을 낼 수 있을까. 가입 기준이 국내 체류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는 등 외국인 대상 보험 규제가 엄격해진다고 한다. 보험료도 인상된다. 하지만 저소득층 이주민에 대한 대책은 들려오지 않는다.

 

언어를 몰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선조들이 러시아로 간 이후, 가혹한 역사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몇 차례의 이주 끝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뿌리를 지탱해줄 많은 것들이 사라진 후였다. 기반이 취약하기에 지원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원 정책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이들의 삶을 해친다.

소냐는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말을 하지 못 했기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법을 알 수 없었다. 온 종일 혼자였을 12살 아이를 상상해본다. “그때는 동네가 조용하고 깨끗했어요.” 모두가 일터와 학교에 있을 시각, 한적한 동네에서 무료한 시간을 견뎠다. 1년 뒤 학교에 들어갔지만 상황은 별다르지 않았다.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홀로 기다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찾아 헤매고

나눈 이야기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 소재가 ‘일’이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공장에 파견알바도 갔다. 혼자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제조업 일자리를 구했단다. 용감하다고 감탄했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 했을 시간이 그려졌다. 집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다.

공장 일은 고됐다. 출퇴근용 승합차에 실려 공장에 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승합차에 실려 왔다. “말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내 옆에서 ‘쟤는 고려인이니까 돈을 덜 줘도 된다’고 그랬어요.”

꿈이 노무사라고 했다. 노동에 관한 법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돈 모아 ‘인력사무소’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흔히 듣기 힘든 장래희망 직업이다. 이유를 물으니 고려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단다.

소냐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돈이다. 일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제가 f-1(방문동거 비자)이예요. 그 비자로 공장 알바 못 가요. 그런데 제가 한국어를 해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알다시피 한국어 교육은 지원이 늦었고, 비자 문제는 소냐에게 늘 공포를 안겨줬다. 소냐는 고려인 4세로, 현행 법은 고려인 3세까지를 재외동포로 인정한다. 그래서 성년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한숨 돌릴 만한 소식이 있었다. 고려인 4세도 동포 자격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재외동포법 시행령)이 예고된 것이다.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소냐는 친척도 없는 우즈베키스탄에 혼자 가야 한다. 그런데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고 했다. 비행기표 값부터 걱정한다. 소냐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체류자격만이 아니다. 졸업하기 전부터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생활의 안정이 부재하다.

 

터전을 마련하는 일

한국의 주요 이주정책은 주로 ‘외국 인력 활용정책’에 맞춰져 있다. 인력정책으로 접근하면 결국 1차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이 우선되게 된다. 지원정책도 그에 맞춰 제공된다.

단기노동력, 그러니까 일회용 노동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집단(이주노동자)에겐 가족 단위의 복지와 지원이 고려되지 않는다. 머물면 안 되는 존재라 여기니까. 그런 이유로 다문화(결혼이주여성) 가족과 이주노동자 가족이 받는 지원정책은 꽤나 차이가 난다.

소냐에겐 지원되지 않던 한글 교육이 다문화 가족에게는 방문 교육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지원된다. 보육 서비스, 주거 지원도 마찬가지다. 고려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는 이 지점에서 모순된다.

한민족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을 조상들의 나라라 여기길 바란다. 이들이 한국 땅에서 살고 싶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이 따라와야 하는데, 이는 저임금 외국인력 정책과 어긋난다. 저임금 3D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수가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들이다.

몇 년 사이, 고려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고려인지원센터가 안착되는 등 지원정책이 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폭넓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알다시피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다.

외국인이건 동포이건 국적이 무엇이건, 사람이 왔다. 그의 체류를 허가했다면, 그의 터전 또한 마련해야 한다. 그가 지낼 장소를 내어주어야 한다. 그 장소가 때론 가족이 된다. 가족단위 생활지원이 필요하다.

 

 

투데이안산  jun@todayans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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